Warum? (왜?)

강윤주 교수
(온라인교육지원처장 겸 교수학습지원센터 소장, 대학원 전공 주임교수)

 

경희사이버대 문화예술경영학과 스터디 모임 중 하나인 “강예사”는 해마다 학술제에 참여하는 전통을 가지고 있다. 얼마 전 있었던 모임에서 나는 참석자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여러분은 왜 ‘논문식 글쓰기’를 배우려 하나요?”라고. 생각해보면 각자의 생업을 이미 십수년간 해온, 각자의 분야에서 전문가인 이들이 새삼스럽게 ‘논문식 글쓰기’를 배워야 할 이유를 찾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주술 관계가 들어맞는 문장을 구사할 줄 알아야 한다, 정도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 교양인으로서, 또 지식인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이겠지만 그걸 넘어선, 인용문의 출처 표기는 어떻게 하고, 참고문헌의 내용은 어떤 식으로 기술해야 하는가 등은, 직업적으로 논문을 써야 하는 나 같은 사람이 아닌 이상 그 필요성을 찾기 어려운 학습 내용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나는 그들에게 그것이 왜 필요한지 한번 생각해 보라고 나름 ‘도발적’인 질문을 던져본 것이다.

리포트 등의 소논문을 쓰면서 여러분은 어떤 생각을 하는지? 학술제에 제출해야 하는 정식 논문 형식이 아니라도 리포트 역시 기본적으로 지켜야 하는 일정한 양식이 있고 그걸 처음 접하게 되는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양식을 지키는 일이 번거롭고 곤혹스러운 일이 될 수도 있다. 한 학생은 이런 대답을 내놓았다. “저희가 몸담고 있는 문화예술 분야의 성격상 이론적이고 이성적이기보다는 감성적이고 정서에 호소하는 문화에 가까운 게 사실인데요… 그저 한 문장을 쓰더라도 그 문장이 옳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근거를 대야 한다는 게 너무 어렵습니다…”

그렇다. 학문적 글쓰기를 한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생각한다는 말에 다를 바 아니다. 여러분이 쉽게 쓸 수도 있는 그래서,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등등 소위 접속어를 쓰게 될 경우 접속어로 연결되는 앞뒤 문장이 과연 그 접속어로 연결되어도 괜찮은 논리 구조를 가지고 있는가를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내 나이 스물일곱에 독일 유학길에 올랐을 때 다른 건 몰라도 글쓰기에는 나름 자신이 있었다. 여고 시절 교지 편집부 생활을 시작으로 학교 대표로 각종 백일장에 참가했고 (비록 수상은 몇 번 못했지만), 대학 전공은 국문학에다 4년 내내 (물론 연애하느라 글쓰기를 많이 한 건 아니지만) 문학 서클에 몸담았으며, 졸업과 동시에 나름 의미 있고 인지도 있는 잡지사에서 3년 넘게 기자 활동을 했고 이후에는 1년간의 방송 작가 생활까지 했는데… 독일어를 처음 배우는 게 어렵지 독일어로 글을 쓰는 게 낯설지는 않으리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아뿔싸… 어학 코스를 마치고 막상 대학의 정식 코스를 밟으며 리포트를 제출하는 상황이 되자 내 자신감이 그야말로 ‘근자감(근거없는 자신감)’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했다. 내가 내는 리포트는 그야말로 빨간 줄 벅벅 그어진 ‘피바다’가 되어 돌아오기 일쑤였고 거의 한 문장도 빼놓지 않고 물음표 옆에 “Warum? (왜?)”이라는 단어가 붙어 있었다. 곧, 논리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뜻이었다. ‘그걸 왜 일일이 설명해야 해?’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솟구쳐 올라왔으나 독일인들의 눈에 내 문장은 근거가 부족한, 사이사이 구멍이 너무나 크게 나있는 문장들의 나열에 불과했다.

이후 8년 간의 독일 생활은 내게 논리와의 싸움이었다. 문장 하나를 쓰고는 깊이 생각하는 습관이 생겼다. 이 문장과 앞뒤 문장의 관계는? 인과 관계인가? 전환을 의미하는 것인가? 아니면 반대되는 이야기인가? 접속어 하나를 쓰기 위해 나는 오래오래 내가 쓴 문장을 들여다보고 곱씹어야 했다.

리포트이건 학술제를 위한 논문이건, 그 속에 등장하는, 우리에게 낯선 수많은 규칙들은 바로 이 논리 체계의 반영에 다름 아니다. 출처 표기 방식만 하나 들여다보더라도 그 문장을 당신이 보았던 그 논문에서 직접 가져온 것인지, 아니면 그 논문에 쓰인 문장의 원문은 따로 있는데 당신이 미처 원문을 볼 시간이 없었거나 찾을 수가 없어서 그 논문을 통해서 보고 인용한 것인지 (이럴 때는 ‘재인용’이라고 한다) 등등 오랜 역사를 거치면서 합의된 약속들의 누적이 학문적 글쓰기 방식에 촘촘히 담겨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결론적으로, 여러분이 학문적 글쓰기를 하는 일은 논리적 사고방식과 엄정한 윤리성을 몸에 익히는 일이다. 우리는 사실 평소에 그렇게까지 논리적으로 사고하며 살지는 않는다. 좋은 게 좋은 것이고 인지상정이 디폴트인 사회를 살아온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하 수상한 이 시국의 한국을 가만히 들여다보라. 약속을 소중히 하지 않고, 많은 사람들의 합의에 의해 만들어진 역사적 논리 구조가 철저하지 않았기에 빚어진 이 허술한 정치 사회 구조는 마치 제멋대로 출처 표기를 하거나 아니면 출처 표기를 아예 하지 않고 남의 생각과 글이 제 것인 냥 훔쳐와 쓴 논문 한편을 보는 것 같다.

이 글이, 이해할 수 없고 따분하다 생각했을 수도 있는 학문적 글쓰기에 입문하는 모든 학생들에게 작게나마 하나의 동기로 작용했으면 한다. 눈동자를 동글동글 굴리며 내 질문에 대한 답변을 고민하던 “강예사”의 멤버들에게는 특히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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