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예술가가 있다

전한호 교수
(문화예술경영학과 학과장)

 

빨간 드레스를 입은 여인이 방 가운데 앉아있다. 그녀의 반대쪽에는 의자가 하나 놓여있고 관람객 중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그녀의 앞에 앉을 수 있다. 긴 줄을 기다려 아이도 앉고 노인도 앉고 이집트인도 앉고 유명 여배우도 앉는다. 다만 두 사람은 말은 하지 않고 원하는 시간만큼 앉아 상대를 가만히 바라본다.

2010년 뉴욕 MOMA(The Museum of Modern Art)에서 진행된 아브라모비치(Marina Abramovich)의 <여기 예술가가 있다 The Artist is Present>란 퍼포먼스의 한 풍경이다. 행위예술가인 아브라모비치는 3개월 동안 매일 7시간씩 자리를 지키며 총 1565여명의 관람객을 맞이했다. 아무 말 없이 조용히 바라봤을 뿐인데 그녀와 마주했던 사람들의 반응은 다양했다. 사람들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환한 미소를 짓거나 말없이 눈물을 훔치거나 가슴에 손을 얹어 그녀에게 경의를 표하기도 했다. 예술가와 눈만으로 교감을 하는 사람들로 전시장은 매일 잔잔한 감동의 연속이었다.

아브라모비치의 작품은 무엇보다 두 가지 점에서 인상적이다. 오랫동안 사람들은 예술가를 특별한 존재로 여겨왔다. 예술가는 평범하지 않은 존재, 신비로운 존재같이 보였다. 예술가의 작품 또한 뮤즈의 영감을 받은 것으로 신적인 아우라를 띤 것으로 간주됐다. 그러나 아브라모비치는 작품 뒤로 숨지 않고 관객과 기꺼이 마주한다. 심지어 예술가는 스스로 행위자이며 바라봄의 대상이 된다. 예술가는 더 이상 자신의 작품을 결과물로 제시하지 않고 관람자와 함께 작품을 만들어 나간다.

아브라모비치의 퍼포먼스에서 창작행위란 그저 상대를 바라보는 것이다. 이름이 무엇인지, 어디서 왔는지 직업이나 출신도 묻지 않고, 자리에 앉는 사람을 가만히 바라볼 뿐이다. 누군가를 본다는 것은 단순한 행위이다. 하지만 인간이 인간을 대하는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다. 때로 눈은 말보다 훨씬 많은 것을 이야기한다. 특히 사람 사이 감정의 교류에서 눈의 역할은 크다. 전시장에서 마주앉은 두 사람은 눈으로 보고, 말하고, 느낀다. 그녀의 눈은 아무 것도 요구하지 않는다. 이러한 그녀의 눈은 마치 거울과 같아서 마주앉은 사람이 살며 겪었을 기쁨과 슬픔, 아픔을 되비쳐준다. 그녀의 눈빛을 경험한 사람들의 얼굴에는 한 송이 꽃이 피어나듯 서서히 웃음이 번지고 불안과 분노 대신 평화와 안식이 자리한다. “관객의 고통을 함께 느끼며 앉아있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다가왔고, 수많은 아픔을 보았습니다. 그들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전합니다.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평가 없이 준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인터뷰에서 사람들은 그녀의 눈에서 자신을 향한 사랑을 보았다고 고백한다.

아브라모비치의 퍼포먼스는 머리보다 눈, 아는 것 보다 보는 것이 더 소중함을 일깨워준다. 그녀에게 본다는 것은 단순한 시각적 관찰이 아니라 사람을 이해하는 진정한 조건이 된다. 우리는 누군가를 오래 바라본 적이 언제였던가? 따뜻한 시선은 우리에게 또 얼마나 큰 위로가 되었던가? (실제 그녀는 TED강연 중 청중들에게 옆 사람을 아무 말 없이 2분 동안 바라보라고 요구한 적도 있다) 레비나스는 사람은 타자와의 만남과 공존을 통해 자기를 보존하고 확산시키는 존재라고 정의한다. 나와 남의 연결을 확인하는 일이 곧 사람이 살아가는 목적이라는 말이다. 아브라모비치는 ‘가만히 바라보기’를 통해 사람 사이를 잇고 있다. ‘여기 예술가가 있어’ 좋은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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